⌛️역사가 증명하는 필연의 미래
ESG경영으로의 전환
ESG로의 전환: 역사가 증명하는 필연의 미래
불가능했던 전환의 역사
19세기 초, 영국 의회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노예무역 폐지를 둘러싼 20년의 싸움이었습니다. 당시 노예무역은 영국 경제의 5%를 차지했고, 수천 명의 일자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반대론자들은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퀘이커 교도들과 인도주의자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 있는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거래할 수 있는가?"
1807년, 영국은 마침내 노예무역을 폐지했고, 1833년 노예제도 자체를 철폐했습니다. 미국도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진통 끝에 1865년 노예제를 폐지했습니다. 당시 남부 농장주들은 "노예 없이 어떻게 농업을 유지하느냐"며 절규했지만, 역사는 그들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했습니다.
노예제 폐지가 우리에게 남긴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인류는 결국 '무엇이 지속가능한 시스템인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착취와 억압 위에 세워진 경제는 단기적으로는 작동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듭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시스템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전환은 단순히 도덕적 각성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노예 노동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줄어들었고, 계몽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평등과 자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성숙했습니다. 경제 구조의 변화와 사회 의식의 진화가 만났을 때, 비로소 전환이 가능했습니다.
ESG 전환, 왜 이렇게 어려운가
2024년, 글로벌 기업들은 ESG 목표를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유니레버는 2019년 선언한 플라스틱 감축 목표를 대폭 축소했고, 코카콜라는 "혼자서는 할 수 없다"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월마트, 맥도날드, BP, 쉘도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중입니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원의 부족입니다. 예산, 인력, 전문 지식, 시간. ESG 전환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일수록 부담은 더 큽니다. 한국의 한 제조업체 담당자는 "ESG 공시 준비만으로도 기존 인력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고 토로합니다.
둘째, 내부 구성원의 인식 부족입니다. 많은 기업에서 ESG는 여전히 '착한 일'이지 '생존 전략'이 아닙니다.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ESG 전략이 흔들리는 이유입니다. 실무진은 ESG를 추가 업무로 받아들이고, 경영진은 단기 성과 압박 속에서 ESG 투자를 미루게 됩니다.
셋째, 사회적 공감대 부족입니다. 주주들은 ESG 투자를 비용으로만 봅니다. 유니레버가 주주 압력에 굴복해 2010년부터 10년간 이끌어온 지속가능 전략을 철회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외부에서는 "주주 이익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기업은 당장의 실적 압박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전환은 일어난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자발적으로 공시한 기업은 203곳으로, 전년 대비 26% 증가했습니다. 의무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왜일까요? 기업들은 알고 있습니다. 기존의 생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ESG 경영은 단순한 착한 경영이 아닙니다. 인류가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얻은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경제 활동이 환경을 파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불투명한 의사결정으로 신뢰를 잃는다면, 이것이 과연 지속가능한가?"
1979년 Archie Carroll이 제시한 '사회적 책임 피라미드'를 보면, 기업의 첫 번째 책임은 '경제적 책임', 즉 이익 창출입니다. 하지만 같은 해 르네 파세(René Passet)는 더 근본적인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경제(기업) 시스템은 사회 시스템 안에 있고, 사회 시스템은 생명(환경) 시스템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기업이 아무리 돈을 벌어도, 그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해 인류가 살 수 없는 지구를 만들거나,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결국 그 기업도 존속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노예제 위에 세워진 경제가 결국 무너진 것처럼 말입니다.
세계는 왜 ESG를 제도화하는가
이제 전 세계는 이 깨달음을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EU의 공급망실사지침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지침은 기업이 자신의 공급망 전체에서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가 없는지 직접 확인하고 보고하도록 요구합니다.
왜 이런 강력한 규제가 생겨났을까요? 과거 수십 년간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과 느슨한 환경 규제를 악용해왔습니다. 선진국 본사에서는 '지속가능경영'을 선언하고 '착한 기업'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방글라데시 봉제공장의 아동 노동, 아프리카 광산의 강제 노역, 동남아시아 공장의 유해물질 배출을 방치했습니다.
1990년대 나이키가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베트남 하청공장에서 기준치의 177배 유해물질이 검출되고 아동 노동이 발각되자, 나이키는 "우리가 소유하지 않은 공장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19세기 노예 농장주들이 "나는 직접 노예를 소유하지 않았으니 책임 없다"고 변명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나이키 주가가 50% 폭락한 후에야 기업은 하청업체 윤리 기준을 도입했습니다. EU는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업이 공급망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법제화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파괴도 당신의 책임"**이라는 명확한 메시지입니다.
2025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제출도 같은 맥락입니다. 파리기후협약은 단순한 선언이 아닙니다. 인류가 "현재의 생산과 소비 방식으로는 지구가 견딜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고, 매 5년마다 실질적 행동 계획을 제출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왜 이런 국제 협약이 필요했을까요? 기후변화는 한 국가,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나라가 온실가스를 무분별하게 배출하면 전 지구가 영향을 받습니다. 마치 한 공장이 강에 폐수를 버리면 하류 전체가 오염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개별 기업들도 자체 넷제로 계획이 없다면 소속 국가의 NDC 목표를 따라야 합니다. 이는 "기업의 생존이 결국 지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달려있다"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노예제 시대에 "노예 없이 경제가 가능한가"를 물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환경 파괴 없이 경제가 가능한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답을 알려줍니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미래로의 초대
노예제 폐지 당시 사람들은 경제 붕괴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것이 인류 문명의 진보였음을 압니다.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착취와 억압 위에 세워진 사회보다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했습니다.
ESG 전환도 같은 맥락입니다. 환경에 대한 의식, 사회 구성원에 대한 책임, 건강하고 윤리적인 의사결정 체계. 이것들은 '비용'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시스템의 필수 조건'**입니다.
지금은 어렵고 불가능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도, 신분제 철폐도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을 때, 인류는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직장인 여러분, 우리는 이미 그 흐름 속에 있습니다. ESG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입니다. 거스를 수 없다면, 이해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내일은 우리가 만드는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참고자료
- ESG경제신문, "[전환 시선] 기업 ESG 후퇴 어디까지...유니레버와 코카콜라 사례 보니" (2025.02.07)
- ESG경제신문, "2024 5대 국내 ESG 뉴스...ESG 공시부터 2035 NDC까지" (2024.12.20)
- 강경선, "노예제 폐지에 관한 연구 -영국의 경우-", 민주법학 52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