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반복은 익숙함으로 연결되지만 단순히 익숙함이 뛰어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기업 현장에서 리더들을 만나며 늘 궁금했던 질문이 있다. 왜 어떤 리더는 10년의 경험을 통해 탁월한 경영자로 성장하고, 또 다른 리더는 같은 시간을 보내고도 여전히 제자리일까? 경험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을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다.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
지난주 한 중견기업 임원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20년 경력의 한 임원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은 항상 똑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사람을 바꿔도, 프로세스를 바꿔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물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요즘 직원들이 주인의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대화는 조직연구가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가 말한 '숙련된 무능(skilled incompetence)'의 전형을 보여준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시도하고, 여전히 같은 결과를 얻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관점이나 접근방식을 의심하지 않는 것. 유능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방어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는 무능하다는 역설이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그 경험에서 새로운 인식을 확장하지 못하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과오와 실수를 정당화하고, 낡은 생각을 포장하는 데만 능숙해질 뿐이다. 조직에서 "우리는 늘 이렇게 해왔어요"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면, 그 조직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지만 학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찰 없이는 성장도 없다
그렇다면 경험을 성장으로 바꾸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성찰(reflection)'이다.
성찰이란 자신의 경험을 의미 있게 숙고하고, 기존의 인식과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다. 단순히 "오늘 미팅은 어땠지?" 하고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왜 나는 그 순간 그렇게 반응했을까? 내 가정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방식은 없었을까?"를 묻는 것이다.
데이비드 콜브(David Kolb)가 제시한 '경험학습(experiential learning)' 모델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경험 → 성찰 → 개념화 → 실험이라는 순환 과정에서, 성찰이 빠지면 우리는 그저 경험을 반복할 뿐 새로운 학습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성찰이 다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아, 내가 실수했구나" 정도의 표면적 성찰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변화를 이끄는 것은 '비판적 성찰'이다.
비판적 성찰이란 종래의 행동, 태도, 신념, 가치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생각 전쟁'이다. 이 전쟁이 불편하다고 회피하면, 경험은 그저 시간만 소비하는 반복이 될 뿐이다. 하지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면, 우리는 뻔한 생각과 행동의 틀을 깨고 새로운 차원의 인식으로 도약할 수 있다.
리더십의 본질은 성찰에서 시작된다
카이스트에서 13년째 리더십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있다. 리더십은 상황에 맞추어 처세하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 방식(way of being)'이라는 것. 그리고 그 존재 방식은 성찰을 통해서만 구성된다는 것.
성찰적인 리더는 현실을 직시한다. 불편한 진실도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현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당겨와 새로운 사명과 목적을 창안한다. 이렇게 창안된 비전은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리더 자신과 조직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무대가 된다.
반면 성찰이 부재한 리더는 어떤가? 그들은 누군가의 요구와 압력에 따라 현실을 구성한다. 뻔한 전략을 되풀이하고, 과거의 성공 공식에 갇혀 새로운 시도를 회피한다. 결국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리더십의 실패를 맞이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는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지식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 즉 성찰의 깊이가 진정한 앎을 만든다는 뜻이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성찰의 습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찰을 실천할 수 있을까?
먼저, 일상에서 멈추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앞으로만 달리면, 우리는 경험을 그저 지나쳐 버리게 된다. 하루 10분, 오늘의 중요한 순간을 떠올리고 질문을 던져보자. "왜 그랬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
둘째, 내 가정(assumption)을 의식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가정 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직원들은 시키는 일만 한다", "고객은 가격에만 민감하다" 같은 암묵적 가정들. 이런 가정들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내 편견인지 질문해야 한다.
셋째, 다른 사람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혼자만의 성찰은 한계가 있다. 동료, 부하, 때로는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내가 보지 못한 맹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 방어하지 말고, 경청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 전쟁을 마주하는 용기
성찰은 결코 편안한 과정이 아니다. 내 믿음과 신념을 의심하고, 내 한계를 인정하고, 때로는 내가 틀렸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바로 이 불편함이 성장의 신호다.
MG새마을금고나 스타벅스처럼 전국적으로 지점을 가진 고객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며 확인한 것이 있다. 진정으로 성장하는 조직은 예외 없이 '성찰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 실수를 감추지 않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함께 질문하고 배우는 문화 말이다.
리더십 개발은 이 성찰이라는 과정 없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리더십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다양한 경험에 대해 자기방식의 해석을 보태어 삶을 구성해 가는 성찰적 존재다. 성찰을 통해서만 우리는 삶을 변화시키고 자신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
당신은 오늘 어떤 경험을 했는가? 그리고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아니, 더 정확히 묻자면, 당신은 그 경험을 진정으로 성찰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