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쉽게 돈 벌기의 허상과 '사이'에서 사는 법
모르는 이가 나를 게으른 실패자로 규정할 때 무엇이 진실인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AI로 쉽게 돈 벌기의 허상과 '사이'에서 사는 법
유튜브를 열면 AI로 월 수천만 원을 번다는 영상이 쏟아진다. "ChatGPT로 10분 만에 전자책 만들기", "미드저니로 하루 100만 원 벌기", "AI 강의 콘텐츠로 불로소득 만들기". 클릭하면 화려한 수익 인증과 함께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가 이어진다. 더 교묘한 것은 "나도 속았다"며 다른 강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영상들이다. 이들은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이번엔 진짜"라고 속삭인다.
문제는 이런 영상들 중 일부는 실제로 수익을 낸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정말 AI를 활용해 짧은 시간에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했고, 예상 밖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니 이것을 단순히 사기라고 규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더 깊은 함정이 있다. 가능성과 보편성을 혼동하게 만드는 것, 예외적 성공을 당신도 할 수 있는 일처럼 포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하지 않는 당신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분법의 함정: 성공 아니면 실패
들뢰즈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대부분 이분법적 구조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성공과 실패, 배움과 무지, 부지런함과 게으름. AI 부업 콘텐츠가 작동하는 방식도 정확히 이 구조 위에 있다. "AI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명제와 "당신은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사이에서, 우리는 자동으로 자신을 게으른 실패자로 규정하게 된다.
하지만 들뢰즈가 말하는 진짜 삶은 이분법 사이의 공간, 즉 '사이(entre)'에 존재한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배움도 무지도 아닌, 그 중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실제로 살아간다. 문제는 이 '사이'의 경험이 콘텐츠로 포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행착오의 과정, 막막함, 작은 깨달음, 다시 찾아오는 혼란—이런 것들은 영상 제목이 되지 못한다.
욕망의 포획: 당신은 왜 클릭했는가
들뢰즈는 욕망이 결핍에서 나온다는 기존 관념을 거부했다. 욕망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힘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 욕망을 특정한 방향으로 포획하고 코드화한다. "AI로 쉽게 돈 벌기" 콘텐츠는 바로 당신의 욕망을 포획하는 장치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인가, 자유인가, 인정인가, 아니면 지금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이 영상들은 당신에게 그것을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 "월 천만 원"이라는 단일한 코드로 모든 욕망을 환원시킨다. 그리고 그 코드를 따라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제시한다.
22년간 기업과 조직을 만나며 배운 것이 있다면, 진짜 변화는 쉬운 솔루션에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변화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향하는지 물어볼 때 시작된다. AI 활용도 마찬가지다. 도구는 도구일 뿐,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당신의 삶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다.
속도의 폭력: 왜 '지금 당장'인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말은 학습이 아니라 불안을 판다. 들뢰즈가 말한 '기관 없는 신체'의 개념을 빌리자면,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부착당하며 살아간다. 직장인이어야 하고, 부업을 해야 하고, AI를 배워야 하고, 그것으로 수익을 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지금 당장' 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 배움은 속도가 아니라 리듬의 문제다. 누군가는 빠르게 달려야 하고, 누군가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 어떤 시기엔 멈춰야 하고, 어떤 순간엔 돌아가야 한다. 300여 개 조직과 일하며 본 성공적인 변화는 예외 없이 자기 리듬을 찾은 경우였다. 남의 속도를 따라간 조직은 단기적 성과는 낼 수 있어도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
사이에서 산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들뢰즈의 답은 명확하다. '사이'에 머물러라. 성공도 실패도 아닌, 알고 있음도 모르고 있음도 아닌, 그 불확실한 공간에서 실험하고 배우며 살아가라.
AI를 배우되, 그것이 당신 삶의 전부가 되게 하지 마라. 수익을 추구하되, 그것이 유일한 가치 기준이 되게 하지 마라. 콘텐츠를 만들되, 그것이 남의 욕망을 포획하는 도구가 되게 하지 마라. 이 모든 '사이'에서 당신만의 리듬을 찾는 것, 그것이 진짜 생산성이다.
유튜브 영상은 계속 당신을 유혹할 것이다. 하지만 클릭하기 전에 물어보라. 이것은 나의 욕망인가, 포획된 욕망인가? 이것은 나의 리듬인가, 강요된 속도인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AI 시대를 자기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경계는 밖에 있지 않다. 당신 안에, 질문과 질문 사이에, 선택과 선택 사이에 있다. 그 '사이'를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