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과 평화의 뿌리에서 리더십을 발견하다
우리 사회에 선한영향력을 끼치는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의 뿌리에서 리더십을 발견해본다
협동과 평화의 뿌리,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선한 영향력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본다. 이익보다 사람을, 경쟁보다 연대를 선택한 이 흐름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산업혁명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이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공통의 이념을 공유하지도, 같은 조직에 속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같았다. 자신이 목격한 모순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로버트 오웬, 로치데일의 노동자들, 그리고 안중근. 그들의 흔적에서 리더십을 논해보자.
로버트 오웬: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
1771년 영국에서 태어난 로버트 오웬은 스물아홉에 면화공장의 경영자가 되었다. 당시 산업혁명기 영국의 공장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소모했다. 하루 14시간 노동, 아동 착취는 시스템의 일부였고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였다. 지배계층은 "노동자들이 가난한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라 말했다.
오웬은 달랐다. 그는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라 믿었다. "이들이 정말 게으른가, 아니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가” 라는 질문을 두고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1800년부터 뉴 라나크 공장에서 그는 자신의 믿음을 실천에 옮겼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아동 노동을 금지했으며,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설립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상점을 만들어 품질 좋은 생필품을 저렴하게 공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생산성은 오히려 증가했고,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협력하며 공장을 지키고 나섰다. 오웬의 방식에 감동한 노동자들이 그의 마차를 말 대신 끌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선의가 아니라 환경을 바꾸면 인간의 행동도 달라진다는 인식 전환이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지역 차원의 성공을 영국 전역으로 확장하려 하자, 자본가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협동조합이 전국으로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웬은 말년에 좌절을 겪었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협동(Co-opera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체계화했고,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무엇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면 사람도 변한다"는 그의 믿음은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로치데일: 공정한 원칙의 탄생
1844년, 오웰이 세상을 떠나기 14년 전, 영국 로치데일의 직물공장 노동자 28명이 모였다. 이들 대부분은 오웬주의자였다. 차티스트 운동으로 대표되는 참정권 투쟁이 실패로 끝난 뒤, 이들은 다른 방식을 모색했다. 저임금과 높은 물가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스스로 식료품 공동구입 조합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합을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The 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이라 명명했다. '공정(equity)'이라는 단어는 오웬이 가장 좋아했던 표현이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이 아니었다. 외상거래가 아닌 현금거래, 품질 좋은 상품, 이윤의 공정한 배분, 1인 1표의 민주적 의사결정. 이 원칙들은 정의와 평등이 살아있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로치데일의 실험은 성공했다. 그들이 만든 운영 원칙은 현대 협동조합의 모델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로치데일 원칙을 채택하고 지속적으로 개정하며 사용하고 있다. 오웬의 철학이 구체적인 실천 원칙으로 체화된 순간이었다.
이들이 만든 원칙이 오늘날까지 유지되는 이유는, 그것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반복해서 점검 가능했기 때문이다. 공정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운영 방식 속에 심어질 때 지속된다. 로치데일의 실험은 “약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보다, “어떻게 하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더 가까웠다.
안중근: 동양평화와 공동체의 비전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에서는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또 다른 이가 있었다. 187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안중근이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1909년 하얼빈에서의 의거로 가장 먼저 떠올려진다. 그러나 그의 사유를 의거 한 장면으로만 묶어두면, 한 가지가 사라진다. 그는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누가 더 강한가”의 싸움으로만 보지 않고, 왜 이런 지배의 질서가 반복되는가라는 구조 문제로 붙잡고 있었다.
당시 동아시아는 ‘협력의 설계’보다 ‘세력권의 재편’이 더 익숙한 언어로 움직였다. 열강의 확장 속에서 한 나라의 주권은 거래되거나 강제될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쟁과 침탈은 “어쩔 수 없는 현실”처럼 포장되곤 했다. 안중근이 문제 삼은 것은 바로 이 “어쩔 수 없음”의 분위기였다. 그는 폭력의 당위가 아니라, 폭력이 계속 선택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에 관심을 두었다고 읽을 여지가 있다.
1909년 10월 26일, 그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곧 체포되어 일본 당국에 넘겨졌다. 이후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을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전쟁의 결과로 포로가 된 존재처럼 인식하려 했고, 그래서 ‘어떤 죄목으로 어떤 질서가 자신을 재단하는지’까지도 질문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바로 그 감옥에서 그는 『동양평화론(동양평화론, On Peace in East Asia)』 집필을 시작한다. 흔히 이 텍스트는 “의거와 별개로 남긴 평화 주장”으로 분리되어 다뤄지지만, 반대로 이렇게도 볼 수 있다. 의거 이후에도 그는 ‘지배를 끝내는 방식’을 협력의 구조로 설계하려는 시도를 놓지 않았다. ‘승자 독식’이 아니라 ‘주권의 상호 존중’을 전제로 삼는 질서를 상상한 것이다.
그가 구상한 내용은 미완의 원고 자체만으로는 온전히 남지 않았지만, 심문 기록과 연구를 통해 큰 윤곽이 알려져 있다. 핵심은 한국·청·일 삼국이 뤼순에 평화회의 성격의 기구를 두고, 공동은행과 공용화폐 같은 경제 장치를 마련하며, 연합군에 준하는 공동 대응 체계를 구상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평화를 원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무엇인지를 제도 형태로 묻고 있다는 점이다.
그 비전이 특별하게 읽히는 이유는, 일본 중심의 패권 질서가 아니라 삼국의 주권을 전제로 한 협력을 상정했다는 데 있다. 안중근은 자신의 행위를 “한국을 위하여”라는 말로만 닫지 않고, 동양의 평화가 세계의 평화와 이어진다는 확장된 언어로 말하려 했다. 이 지점은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한 사람의 결단을 우리는 어디까지 ‘정치적 폭력’으로만 읽을 것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지배 구조를 끊기 위한 설계의 시도’로도 함께 읽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이 구상이 “말로만 남은 이상”으로 끝난 데에는 역사적 조건이 있었다. 그는 사형 선고 이후에도 집필을 마치기 위해 집행 연기를 요청했고, 재판을 주재한 측이 일정 기간의 유예를 약속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본국의 지시 아래 신속한 집행이 이뤄졌고, 그는 1910년 3월 26일 뤼순에서 처형되었다. 그가 남긴 평화 구상은 완결된 제도가 아니라, 끝까지 질문하려 했던 방향으로 남았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가져갈 실무적 질문은 단순하다. 어떤 리더는 “옳은 주장”을 남기고, 어떤 리더는 “작동하는 구조”를 남긴다. 안중근이 감옥에서 붙잡았던 질문은 후자에 가까웠다. 지금 우리 조직이 말하는 ‘연대’는 선언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갈등이 생길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장치와 절차로까지 이어지고 있는가.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세 사람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누군가는 리더십을 성과로, 누군가는 영향력으로, 누군가는 결단으로 말할 수 있다.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오웬과 로치데일의 노동자들, 그리고 안중근을 함께 놓고 보면, 리더십은 오히려 그 반대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굳어진 현실을 성과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그 현실을 ‘질문 가능한 것’으로 되돌리는 힘에서 말이다.
오웬은 “가난은 게으름의 결과”라는 통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노동자를 평가하기 전에, 노동자가 놓인 환경을 먼저 보았다. 그래서 그의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이 사람들을 바르게 만들 수 있나?”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바르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나?” 그 질문은 도덕적 훈계로 끝나지 않고, 노동시간 단축, 아동 노동 금지, 교육과 생활 인프라 구축 같은 구체적인 실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실험은 “사람은 통제해야 한다”는 시대의 상식을 “환경을 바꾸면 사람도 달라질 수 있다”는 새로운 상식으로 밀어 올렸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이 던진 질문 역시 비슷한 결에서 시작되었다. “약자는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를, 그들은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방식은 분노의 구호가 아니라 운영의 규칙이었다. 외상을 끊고 현금거래를 택한 이유, 품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 1인 1표를 고집한 이유는 모두 같다. 공정은 마음먹는다고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되돌아갈 절차와 기준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들은 이상을 말하기보다, 이상이 조직 안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만들었다.
안중근은 더 극단적인 시대 조건 속에서 비슷한 질문을 붙잡았다. 제국주의의 확장 속에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현실의 언어처럼 유통되던 시기였다. 많은 이들이 그 질서를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체념할 때, 그는 그 체념 자체를 문제로 보았다. 1909년 하얼빈에서의 의거는 그가 선택한 급박한 결단이었지만, 그 이후의 시간이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방향이다. 그는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며, 지배의 반복을 끊는 방식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누가 이기는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전쟁과 지배를 계속 가능하게 만드는가’로 질문을 옮긴 것이다. 그래서 그의 구상은 감정적 평화 선언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할 기구와 장치—평화회의, 공동의 금융과 화폐, 공동 대응 체계—로 향했다. 현실 정치의 폭력 속에서도 그는 협력의 설계를 놓지 않으려 했다. 이 점에서 그의 사고는 “의거냐 평화냐”의 이분법으로 정리되기 어렵다. 오히려 “폭력의 시대를 끝내려면, 어떤 구조가 필요하냐”라는 질문이 마지막까지 남는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결국 하나다. 그들은 시대가 당연하다고 말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르게 보기’는 단순한 비판에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원칙으로 만들고, 원칙을 구조로 만들었다. 오웬은 협동의 형태를, 로치데일은 운영 원칙을, 안중근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구상의 방향을 남겼다. 리더십은 이 지점에서 ‘좋은 사람의 성품’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설계’로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인식은 왜 중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또 한 가지를 묻게 된다. 이들은 어떻게 자기 시대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을까. 단지 똑똑해서였을까. 용기가 많아서였을까. 물론 그 요소들을 완전히 빼기는 어렵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그들이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찰은 상황을 바꾸기 위한 전술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되돌아갈 기준점이었다.
오웬은 성공한 경영자였고, 그 성공은 그를 기존 질서의 편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장 안에서 매일 확인하는 고통을 ‘어쩔 수 없는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가난을 개인 탓으로 돌리기 쉬운 시대에, “무엇이 부당한가”를 삶의 언어로 계속 확인했다. 안중근은 감옥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조차 동양의 미래를 사유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의 질서를 구성하는 질문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이들에게 성찰은 도덕적 장식이 아니라, 현실의 압력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내부의 나침반이었다.
그 나침반은 결국 자기인식으로 이어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리더십은 외부 평가와 단기 성과에 쉽게 종속된다. 반대로 이 질문에 계속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순간의 성공과 순간의 비난을 모두 통과해 더 먼 것을 본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를, 현재의 성취를 넘어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생긴다.
리더십의 힘
오늘날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가 존재하는 것은 제도와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 제도와 정책이 “가능하다”는 감각은 누군가의 질문에서 시작되었고, “지속될 수 있다”는 확신은 누군가의 원칙과 구조에서 자라났다. 산업혁명기의 착취 구조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조건으로 바꾸려 했던 오웬, 노동자 스스로 공정을 운영 규칙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로치데일의 선구자들, 제국주의의 언어가 지배하던 시대에 평화를 감정이 아니라 제도적 구상으로 붙잡으려 했던 안중근. 이들의 유산은 선행담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방법론에 가깝다.
이들이 남긴 것은 “좋은 뜻”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문제로 볼지 결정하는 질문, 그 질문을 공동체의 기준으로 고정하는 원칙, 원칙이 무너지지 않도록 반복해서 작동하게 만드는 구조. 이 연쇄가 실제로 작동했기 때문에,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선한 마음이 없어도 공정이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가볍지 않다. 우리는 지금 어떤 현실을 너무 빨리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믿는 가치는 무엇이며, 그 가치를 조직 안에서 실제로 지키게 만드는 원칙과 절차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절차가 흔들릴 때마다 되돌아갈 기준점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는 순간, 리더십은 지위나 권력의 언어를 벗고 다시 태어난다.